조선 유일의 ‘문예전문지’를 표방하며 발행된 『조선문단』은 1920년대 한국 근대문학의 지형을 살피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매체이다. 이광수는 『조선문단』을 통해 문학의 독자적인 영토를 개척하고자 했으며, 잡지의 지면을 문단 전체에 개방하여 동인지의 폐쇄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또한 다양한 기획을 통해 자신의 문사 담론을 구체화시키는 한편, 현상문예를 통한 작가 추천 제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방인근은 잡지의 실질적인 운영과 편집을 담당하며, 이광수의 기획 의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특히, 『조선문단』은 기존 잡지에서는 찾기 어려운 다양한 미디어 전략 및 기획을 시도하였다. 예컨대, 다양한 ‘문사’ 관련 기획들을 통해 문학 작품 너머에 존재하는 문학 창작 주체의 존재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민중을 이끄는 지사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또한 문학창작과 관련한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듣거나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물의 작가적 면모를 통해 문사가 지닌 문학창작주체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문학을 지망하는 독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이었으며, 특정 작가들에게 문사로서의 권위와 아우라를 부여하는 방편이 되기도 했다. 한편, 『조선문단』의 현상문예는 새롭게 시도되는 ‘문예전문지’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적인 미디어 전략이었다. 『조선문단』의 현상문예는 문단을 대표하는 이광수, 주요한, 전영택을 고선자로 내세우고, 상금 대신 신진작가로의 승인과 추천을 통해 독자들을 유인하고자 했다. 하지만 우수한 신진작가의 등용을 통해 조선 문단의 건설을 표방한 『조선문단』의 현상문예는 안정적인 독자 확보는 물론 기존 작가들의 문단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조선문단』은 1920년대를 대표하는 문예 전문지가 되었고, 『조선문단』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은 당대의 ‘문사’로 기억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