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까지 국경을 넘는 인간의 이동은 오늘날과 같이 엄격한 규제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자유로웠던 노동력의 이동이 오늘날의 ‘이민’으로 변화된 것은 19세기 말경 국민국가 건설과 민족주의 운동이 결합되고 난 이후였다. 국민국가가 세계를 형성하는 기본 단위로 여겨지기 시작하자, 이민자는 토착민과 구분되어 ‘타자화’되었다. 국가의 경계를 사회의 경계로 간주하는 관점에 기초하여, ‘뿌리 뽑힌 자’, 사회의 ‘외부자’ 그리고 국민국가의 복지시스템을 갉아먹는 자라는 식의 이민자 이미지가 대중화되었다.
본 연구는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밑바탕에 ‘방법론적 국가주의’, 즉 사회생활의 네트워크가 민족적 사회라는 단일한 컨테이너 내에 구축되어 있다는 가정이 작동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민자의 삶뿐만 아니라,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이민자의 사회적 삶도 상당히 초국적이었다. 19세기 후반의 이민자는 초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고국과의 지속적인 연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민자에게 덧씌워진 국민국가적 담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영토-인구-문화의 삼위일체에 기반 한, 사회에 대한 컨테이너식 사고방식으로부터의 탈피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