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플럼우드(Val Plumwood, 1939~2008)는 서구 문화의 근저에 자리한 이원론과 인간중심적 세계관의 지배 관점을 비판한 호주의 대표적인 생태철학자이다. 그는 호주 원주민의 종교문화와 생활방식에서 포착되는 애니미즘에서 서구문화의 고질적인 물질/영성의 이분법적 사유의 폐해를 극복하고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글에서 나는 플럼우드가 비인간 자연과의 공존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면서 제안한 철학적 애니미즘 논의의 주요 쟁점을 물질성, 영성, 먹이, 죽음, 장소의 영성, 탈자본주의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을 시도했다. II장에서는 ‘비인간의 귀환’이라는 제하에 근대적 시각에서 이루어진 ‘낡은 애니미즘(old animism)’ 논의,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일어나는 ‘새로운 애니미즘(new animism)’ 논의와 비교해서 플럼우드의 철학적 애니미즘의 특징을 분석했다. III장에서는 뿌리 깊은 이원론적 사유의 전복을 위하여 인간과 비인간 세계가 공유하는 ‘물질성’에 주목하는 플럼우드의 논의를 ‘유물론적 영성’이라는 제하에 살펴보았다. 특히 이 세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물의 행위자성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무화하는 새로운 유물론 논의의 일반적 경향과는 달리, ‘자연 세계’에 논의를 집중하는 플럼우드의 전략의 특징과 효용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IV장에서는 ‘먹고 먹히는 세계’라는 제하에 죽음과 먹이 개념을 중심으로 플럼우드에게서 나타나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의 관계성을 살피되, 심층생태학자 아느 네스와 비교하여 플럼우드의 논의의 차별성에 주목하였다. V장에서는 장소와의 연결을 강조하는 플럼우드의 논의를 탈 자본주의적 세계 이해라는 측면에서 해석을 시도했다.
플럼우드는 영과 물질을 대립적인 것으로 여기는 서구문화의 고질적인 이원론을 거부하면서, 지상의 것과 물질적인 것을 긍정하고 인간과 비인간 세계의 연결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물론적 영성’이란 개념을 전략적으로 내세웠다. 또한 애니미즘을 새롭게 소환해서, 지구에는 인간 이외에도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저마다 역할을 하는 다양한 비인간 행위주체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생태학적 세계 속에서 신체화된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를 위한 먹이가 된다고 역설하면서, 죽음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순환을 긍정적으로 조명하였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플럼우드는 인간이 비인간 타자와 연대하고 ‘함께 서기’ 위한 철학적 단초를 제시하려 했던 것이다. 나아가 그는 비인간 자연의 수많은 타자들이 저마다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서로 관계 맺는 세계에 대한 생태학적 감수성을 계발하기 위해, 현실의 장소에 대한 경험적이고 감정적인 접근 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공간관에 저항하는 비판적 접근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플럼우드가 제안한 철학적 애니미즘은 이 세계가 인간의 독무대가 아니며 또 다른 비인간 행위주체/행위자/배우들이 복잡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환기시키며, 이 세계의 다양한 배우들과 대화적인 관계를 수립할 것을 우리에게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