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8세기 중후반 ‘星湖學派’로 대변되는 근기남인학계의 심장부에 존재했던 安鼎福의 대 영남 교유관계를 지식문화적 영역에서 분석하여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 초점이 있다. 안정복의 영남학인과의 교유는 인조반정 이후 지속되었던 ‘京南(近畿南人)’과 ‘嶺南(嶺南南人)’의 학문적 제휴의 틀을 수용하면서도 그 외연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고, 나아가 이것은 19세기 성호학의 적통이었던 許傳(1797~1886, 性齋)이 영남지역에서 다수의 문인을 규합하며 성호학의 영남 확산을 극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남’과 ‘영남’의 지식문화적 교감 및 제휴에 있어 안정복의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