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고는 한반도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였던 재가승(在家僧)들이 어떤 역사적·사상적 배경에서 출현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불교교단사(佛敎敎團史)의 관점에서 고찰한 것이다. 문헌상에 나타나는 한국불교의 재가승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이다. 그 밖에 『고려사(高麗史)』와 송(宋)의 사신 서긍(徐兢, 1091~1153)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과 조선 후기 조정의 관리나 유자(儒者)들의 저술에 단편적으로나마 북방 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던 재가승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기록들은 대부분 흥미 위주로 여진유민(女眞遺民)으로 추정되는 재가승들이 북방 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취처육식(娶妻肉食)’을 한다는 사실을 크게 부각(浮刻)시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할 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마니시 류(今西龍)를 비롯하여 함경북도 사회과에서 관내에 거주하고 있던 재가승의 현황과 실태에 관해 조사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조사 보고서도 조선 후기 조정의 관리나 유생들의 기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재가승의 유래’에 관한 것이고, ‘재가승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재가승들이 온갖 사회적 멸시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불교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혈육을 통해 대대로 법맥(法脈)을 계승하였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
국내 불교학계에서는 해방 이후 현재까지 한국불교의 재가승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고는 북방 변경 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던 재가승에 관한 최초의 학문적 시론에 불과하다. 본 고를 계기로 한국불교의 재가승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