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간섭기에 공녀 요구가 본격화되면서 지배층 내에서 여성 지위는 하향되는 위협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공녀로 간 여성이나 원 간섭기 고려 여성의 지위가 일괄적으로 약화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황후의 지위에 오른 여성들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른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문의 이익을 위해 딸을 바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고려 조정의 공녀 차출을 피하기 위한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회피하거나, 豫壻를 얻거나 일부다처제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던 것이 그 예이다.
원에 간 공녀 중 禿魯花와 관련 된 인물은 달마실리황후와 백안홀독황후이다. 이들은 원 인종의 황후로 고려 내에서도 명망있는 가문의 딸들이었다. 이에 반해 기황후의 가문은 고려 대표 가문인 고려 왕실도 아니었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유력한 가문도 아니었다. 기황후는 그의 가족과 친척들이 기황후의 세력을 믿고 교만하고 횡포한 모습을 보였다. 공녀 출신인 자신과 황태자의 권력 유지를 위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기 위하여 공녀들을 직접 관리하고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고려에서 원으로 간 세 명의 황후는 공녀로 차출되어 최고의 지위까지 올랐으나, 그녀들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던 시도는 각각 다른 결과를 낳았다. 또한 그녀들의 지위 상승은 더 많은 공녀 차출을 낳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한 결혼제도의 변화는 고려 말기 여성지위 변화와 사회 변동의 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