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공산주의그룹이 주도한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한 권오설은 사회주의를 수용하기 전까지 계몽적 생활개선운동에 참여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그의 활동을 1910년대 민족독립운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파악하면서 그의 사회주의 수용과정과 대중운동 중심 민족해방운동 전개 과정을 상세히 규명하지 못했다. 본고에서는 그의 성장배경 및 사회주의 수용, 혁명계급의식 및 민족혁명운동론 수용 등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그의 민족해방운동 전개 배경 및 과정을 규명했다.
권오설은 계몽적 생활개선의식과 혁명계급의식을 형성하면서 민족혁명운동론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19년에 귀향한 후 청년층을 대상으로 계몽적 생활개선활동을 전개한 그는 김남수의 영향으로 1923년 풍산소작인회와 풍산청년회에 참여했다. 1924년에는 조선노농총동맹 내 무산자동맹회를 대표하는 상무집행위원이 될 수 있었고, 사회주의를 수용하면서 혁명계급의식을 견지했다. 이때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청에 연결되면서 코민테른 민족혁명운동론을 수용했다. 그가 계획한 6·10만세운동은 민족혁명운동론에 기초한 민족협동전선 중심의 민족해방운동 현실화 시도로, 천도교 구파 및 학생계층을 포섭하면서 대중의 민족해방의식을 고양하고자 했다.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6·10만세운동 계획은 신간회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공산주의그룹 중심 민족해방운동 전개와 민족협동전선 수립의 선구적인 역할로서 기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