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월회는 1920년대 초에 설립된 연극 단체로, 제1~2회 공연을 통해 조선의 연극계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준 극단으로 기억되고 있다. 토월회는 연극사적으로도 1920년대 신극 운동의 시발점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으며, 192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극단 중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제1~2회 공연 이후 토월회는 신극 운동과 일정한 거리를 둔 극단으로 변모했으며, 그 과정에서 대중극단의 성격을 가미하기도 했다. 이러한 토월회가 1929년에 내놓은 〈아리랑고개〉는 토월회의 역량과 공연 노하우 그리고 시대적 의미와 당시 연극계 상황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동시에 토월회가 1920년대를 거치면서 생성한 자신들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토월회를 바라보는 기존 시각은 신극과 대중극의 엇갈린 행보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토월회 창립기에 보여 준 연극적 목표로서의 신극적 지향과, 그 이후 극단 변모와 운영을 통해 추가·변화·수용된 관객과 흥행을 고려한 대중극적 지향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접목·혼합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토월회는 그러한 도정의 끝에서 〈아리랑고개〉를 통해 관객의 환호와 지지를 확보하면서도, 1920년대 조선의 실상을 외면하지 않는 작품 산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신극적 지향과 대중극적 지향이 맞물려서 한 작품 〈아리랑고개〉에 통합된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이러한 의의에 비해 〈아리랑고개〉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았기에, 이 연구는 〈아리랑고개〉의 탄생 과정과 그 연극사적 의의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