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고는 조선시대의 서원 건축이 갖고 있는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학궁이라는 원론적인 건축 모델의 존재와 그에 대한 존중과는 별개로, 건축의 속성상 지역의 기술, 관습에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는 종묘, 궁궐 등을 포괄하여 거의 모든 건축의 유형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서원의 경우에도 온돌과 마루의 사용 등 조선의 건축관습을 따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누각의 도입과 발달, 정침의 재해석 등 몇 가지 지점을 주목할 수 있었다.
누각은 조선 서원 건축의 특별한 건축유형이자 조선 서원의 이상을 잘 드러내는 장치였다. 서원의 누각은 향교의 누각형 명륜당의 경험으로부터 발생되었다고 생각된다. 무변루에서 양쪽에 온돌방을 들이고, 중앙부에 3칸의 대청을 둔 것은 향교의 명륜당 평면과 매우 닮아있다. 멀리는 고대 정침의 평면형이나 궁궐, 객사의 사례들과 연결되는 보편성을 띠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별도의 강당을 보편화하기 시작한 서원에서는 누각의 방은 불필요한 것이었고, 이후의 서원들은 옥동서원 청월루와 같은 특별한 예를 제외하면 모두 전체를 마루로 마감하는 개방적인 누각으로 전형화되었다.
또한 돈암서원 응도당으로 대표되는 고대 정침의 건축적 실천도 주목되어야 한다. 강당, 사당, 누각, 동서재 등이 완비된 서원의 건축적 전형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정침을 구현하여 학궁에서의 예를 제대로 갖추고자 하는 학문적인 욕구가 존재하였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응도당이다. 이론적으로 해석된 정침의 구성을 구체적인 건물로 실현하는 데에는 결국 지역의 건축술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고 응도당은 완전한 목구조에 마루로 마감한 조선적인 건축 수법으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