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寒岡學의 湖西 확장 양상을 木川 출신의 寒岡門人 黃宗海(1579-1642)의 사례를 통해 시론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강학은 영남을 중심으로 연구되어 왔고, ‘江岸學’ 또는 ‘洛中學’이란 틀 속에서 깊이 있는 이해가 이루어졌다.
정구가 영남 출신이고, 한강문인의 절대 다수가 영남지역에 분포함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한강학을 지역학의 범주에 한정하지 않고 보다 확장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글의 핵심 논점이다.
황종해의 한강문하 입문은 木川을 비롯한 호서 일원에 한강문파가 형성되는 마중물이 되었고, 그가 가졌던 계승의식은 호서권을 한강학의 副心地로 설정해야 하는 역사적 근거가 된다. 동시에 이것은 한강학이 지역학으로서의 嶺南學을 넘어 조선의 지식인들이 공유·공감했던 학술문화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증적 진단의 과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