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해전은 임진왜란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조명연합수군이 함께 전투에 임했다는 점과 7년 전쟁의 최후 결전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중요성에 비해 이 전투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단지 이순신이 전사한 전투이고 일본군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전쟁이 끝났다는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사실 노량해전의 배경, 전투에 참전한 군사 규모, 전투 경과와 그 의의 등을 다룬 개별적인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 전투에 참전한 조선 수군과 명 수군의 규모는 지금까지도 학자에 따라 조금씩 견해가 다르다. 그나마 조선 수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 파악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명 수군의 규모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노량해전의 조명연합수군 규모는 당시 조선과 명 수군의 전략과 전술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주제이다. 그 규모를 가능한 한 정확히 파악할수록 조선과 명 수군의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노량해전의 경과와 전쟁의 흐름까지 올바로 읽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 노량해전을 다룬 여러 사료와 연구 자료를 살펴보면서 이 전투에 참전한 각국의 수군 규모를 자세히 고찰하려 한다. 특히 새로이 소개되거나 발굴된 사료를 자세히 검토하여, 기존 연구자들이 노량해전의 조명연합수군 규모에 대해 놓친 부분을 밝혀내려 노력하였다.
조선 수군의 규모는, 명량해전 이후 전선 규모의 변화와 사로병진 작전 시기 전선의 손실 그리고 노량해전 직후 남은 전선의 숫자 등을 비교 및 고찰하여 기존 연구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추정하였다. 이를 위해 『선조실록』, 이순신의 『난중일기』, 조경남의 『난중잡록』, 이원익의 『오리집』, 이항복의 『백사집』, 진경문의 『섬호집』, 일본 측 기록인 『정한록』 등 다양한 사료를 참조하였다.
명 수군의 규모는 중국 측 기록인 『경략어왜주의』, 『양조평양록』, 『경략복국요편』 등을 참조하였으며, 우리나라 기록인 『선조실록』, 이순신의 『난중일기』, 신흠의 『상촌집』, 신경의 『재조번방지』 등을 교차 검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