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주자학(朱子學)의 나라였고, 유자(儒者)와 승려(僧侶)는 대척점에 위치한 상극(相剋)의 관계로 설정되었다. 이런 통념은 일반론적 관점에서는 유효할 수 있지만 생활적 영역, 즉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다 미시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와는 사뭇 다른 결의 사상(史像)과 직면하게 된다.
이 글은 신분적 상극은 상생의 가능성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출발점을 두고 있고, 17세기 호서지역의 유학자 조극선(趙克善)의 일기 『인재일록(忍齋日錄)』・『야곡일록(冶谷日錄)』을 통해 그 해법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물론 유자와 불자의 친화적 삶의 양상은 유자의 신분적, 사회적 우월성을 전제로 하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불 간에도 일방적 수탈이나 압제는 작동하기 어려웠고, 오히려 그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호혜적 행위를 하기 일쑤였으며, 유자가 불자를 생도(生徒)[문인(門人)]로 받아들여 지식을 전수하는 것은 매우 자못 흥미로운 장면으로 포착되었다. 이 글은 숭유억불(崇儒抑佛)이라는 다소 박제된 시각에서 탈피하여 유불 관계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려는 학술적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