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미국영화의 불법 복제본 유통과 그것이 제기한 조선 초유의 영화 저작권 분쟁을 사례를 통해 초창기 한국 영화산업의 배급 네트워크 성립과 발전의 이면을 실증적으로 규명한다. 미국 거대 영화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가 제기한 조선 최초의 영화 저작권 관련 소송이 제기된 1927년은 한국영화사에서 배급업의 분화와 영화 저작권 개념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해이다. 조선인 외화 배급업체인 기신양행이 설립되었고, 일본의 의회에 기존의 불완전한 영화 저작권에 대한 개정안이 제출되어 영화 저작권의 개념이 정교하게 공론화된 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급과 유통의 네트워크를 체계화하려는 조선인 극장의 노력과는 별개로 흔히 해적판(piracy)라고 불리던 “코피(copy)”나 “부정 복사본”의 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영화 복제본의 유통과 상영은 단순한 위반과 침해의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미국의 거대 영화사가 구축한 전지구적 유통 네트워크의 말단에 위치한 식민지 흥행업이 직면해야 했던 구조적인 조건을 함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다음의 두 가지를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첫째, 가설적이나마 해적판 〈동도(Way Down East, 1920)〉가 식민지 조선의 극장가에 도착한 실제적인 경로와 판본의 종류를 추적했다. 둘째, 일본, 중국의 사례를 비교하며 1920년대 극동아시아 시장에 만연했던 “해적판,” 즉 비공인 불법 복제본 유통의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유나이티드 아티스트가 벌인 대대적인 캠페인을 일본, 인도의 사례와 비교하여 비교영화사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