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무산(雪嶽霧山, 1932~2018) 대종사는 조오현(曺五鉉)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하다. 그가 남긴 200여 수의 시조 작품은 많은 문학인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그는 처음으로 ‘한글 선시조(禪時調)’ 영역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된다.
무산은 1992년 신흥사 회주가 된 이후 입적할 때까지 설악산문의 개산을 위해 노력하였다. 무산은 「雪嶽山門을 懸板하는 뜻」이라는 글을 지었는데, 비록 소략한 분량의 글이지만 그의 한국선종사 인식과 산문 개산의 취지는 이 글에 함축적으로 잘 담겨 있다. 이 논문은 무산이 지은 이 글을 중심으로 설악산문 개산과 그것에 담겨 있는 불교사적 의의를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작성되었다.
조계종은 500여 년의 역사를 지난 이후 1941년 ‘조선불교조계종’을 거쳐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재건되었다. 그리고 현 조계종단의 종헌에는 도의가 종조(宗祖)로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조계종과 종조 도의는 역사 속에서 되살아났지만, 구산선문의 역사는 끝내 ‘단절’의 역사로 남게 되고 말았다.
20세기 이후 한국불교사에서 무산의 설악산문 개산은 조계종의 재건에 견줄만한 의의를 지니는 일대 사건이었다. 특히 그가 표방했던 ‘조계선풍 시원도량 설악산문(曹溪禪風始原道場雪嶽山門)’의 취지는 한국선종사, 또는 조계종사의 핵심을 관통하는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한 의의를 지닌다. 무산은 단절되었던 조계종의 산문 역사를 ‘계승’의 역사로 되살린 고승이다. 현대 한국불교사에서 무산의 이러한 업적은 지속적으로 평가되고 선양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