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처음 소개되는 《연행시화첩》은 조선후기 경화세족 출신 관암 홍경모가 1830년과 1834년에 한 연행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유물이다. 여기에는 서울에서 북경에 이르는 노정에 있는 산수경관과 명승고적을 주제로 한 20여 편의 시와 36폭의 그림이 실려 있다. 기왕에 알려진 연행도들이 중국 여정의 그림으로만 구성된 것과 달리 《연행시화첩》에는 국내 여정까지 포함되었다.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화가 ‘문재’는 그려진 대상에 따라 실경산수화, 풍속화, 건축화 등 18세기 화단에서 발달한 회화 형식을 폭넓게 활용하였다. 직접적인 연행 경험이 없었던 화가가 홍경모의 연행시문과 관련 자료를 참고해 그림을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컨대 홍경모가 70대 이후 자신의 자취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평생의 저술을 집대성하는 과정에서 제작된 《연행시화첩》은 연행기록의 시각적 버전(version)이라 할 만하다. 그 배경에는 19세기 들어와 조선 문인지식인들이 연행을 매개로 정보 수집의 범위를 확대해나갔던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홍경모의 가문 의식과 기록 및 정리에 집착했던 개인적 성향이 《연행시화첩》의 제작 동인이 되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