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돌라리〉는 1910년대, 또는 1920년대에 함경남도 일대의 가무놀이 노래에 일본의 창가가 습합되어 생겨난 문화적 혼종의 산물이다. 그런데 함경남도 일대의 가무놀이 노래들은 대부분 ‘라라리’ 구음으로 구성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돈돌라리〉의 문화적 혼종도 함경남도 가무놀이 노래들의 이러한 특징의 맥을 이어 이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이렇게 문화적 습합으로 출현한 〈돈돌라리〉가 크게 호응을 얻으면서 돈돌라리가 함경남도 일대 가무놀이의 전형으로 자리매김 되기에 이르렀다.
돈돌라리의 노래춤판으로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한식 다음날 북청군 남대천 강가에서 벌어진다. 이곳의 돈돌라리를 다룬 1938년의 동아일보 기사가 있어 그 광경을 재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오후부터 신북청역 철교 아래 백사장에 젊은 여자들이 모여 노래춤판을 벌리는데, 그 수가 수만이라 할 정도로 상당하다. 이들은 서로서로 모여 입타령을 하고 춤을 추는데, 그렇게 놀음하는 모둠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수많은 노래춤판이 여기저기 흩어져 남대천 백사장을 가득 채우며 들썩이는 장관이 전개되는 것이다.
돈돌라리는 난장형 가무놀이로서 구성형 가무놀이에 속하는 강강술래, 월워리청청, 놋다리밟기 등과 다른 독자적 특징이 있다. 강강술래는 원무와 여러 놀이로 조직되고, 각 놀이는 주제에 맞는 노래를 부르며 동작은 놀이 내용을 구현하며 형상한다. 이에 반해 돈돌라리는 밖에서 〈돈돌라리〉를 비롯한 여러 노래를 불러주고 안에서는 춤판이 개인들의 집합으로 비조직적으로 형성된다. 돈돌라리의 춤판에 여타 가무놀이와 다른 자유분방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춤판에 흥이 달아오르면 개인 기량의 격정적인 춤사위가 나타난다. 누군가 선도하여 춤의 대열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무동, 꼽추, 유걸이 등의 연희가 벌어진다. 여기에 노래와 장단 소리도 더욱 고조되어 놀이판이 난장의 분위기에 이른다. 돈돌라리에는 놀이욕구와 에너지가 강하게 나타나며, 〈돈돌라리〉는 이러한 놀이판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끈다.
‘돈돌라리’는 ‘라리’계 구음의 맥락 위에 출현하여 구음의 일부 구성음으로 존재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돈돌라리〉의 가창은 구음 비중이 지배적이다. 이것은 〈돈돌라리〉가 본질적으로 입타령의 성격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춤동작을 위한 장단 공급의 기능으로 불리는 노래인 것이다.
돈돌라리 놀이판에 흥이 오르면, 〈돈돌라리〉의 가창에도 놀이정서가 강하게 실린다. 〈돈돌라리〉의 가창은 어느덧 ‘돈돌라리’를 연호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현장의 감흥을 표출하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돈돌라리〉 구음에 삽입된 단편적 어구들도 현장적 정서가 입히게 된다. “시내강변”, “모래청산”, “보배산천” 등은 각각 특정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돈돌라리의 흥취가 가득함을 표상하는 매개들이다. 이러한 매개들을 통해 돈돌라리의 흥취와 감흥이 곳곳에 가득한 세상을 구가한 것이다.
〈돈돌라리〉의 형성배경과 존재국면은 모두 노래춤판의 놀이정서에 맞물려 있다. 〈돈돌라리〉의 정체성이 오롯이 가무놀이 노래로서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돈돌라리〉의 실상과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 놀이 현장을 우선적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