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민족문학론’의 기원은 1960년대 문화적 근대화운동이었다. 여기에서 ‘근대(화)’의 개념은, 근대화를 산업화로 정의했던 것에서 나아가, 봉건성에 저항하고 자유와 사랑의 이상적 서구문화의 에센스를 실현하는 것까지 확대되었다가 1970년대 다시 (신)제국주의적 침략을 철폐하는 것까지 포괄하는 것이 되었다. 『창비』 편집진의 ‘근대화’에 대한 사유구조는 근대화를 끊임없이 보다 이상적인 것으로 확대함으로써 ‘근대화’를 지속적으로 달성해야만 할 어떤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근대화는 한일협정에 대한 찬성에 가까운 현실주의적인 것으로서 『청맥』 편집진 및 역사학계의 반일주의적 근대화와 차이를 보였다.
1960년대 이 근대화 운동의 주체는 초기 지식인과 문인을 문화적 근대화의 주체로 상정했으나, 이후 봉건성과 투쟁하는 공동체로서 소수 선각적 지식인과 다수 민중의 결합을 주장하였으며, 1970년대에는 급격한 산업화의 결과 소외된 민중이 점차 민족운동의 주체로 호명되었다. 1960년대의 공동체주의 모색은 민족과 민중의 호명으로 귀결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주체형성 논리는 개인주의 비판과 소시민의 배제, 사상적 일체화 등의 경향을 띠고 있었다.
역사의식·사회의식을 강조하는 이 운동에서 역사 서사는 저개발국이론의 소개와 맞물려 한국근대사 속에서 근대화이념을 모색하고자 했던 경향이 등장하였고, 이전까지의 역사 서사 방식이 낙후한 민족성—수난의 역사—낙후되지 않은/혹은 낙후되도록 만들었던 전통적 요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창비』 이후에는 역사 속에서 근대화의 가능성들을 찾는 ‘서사’의 구도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