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지향존재론은 ‘객체’ 개념을 ‘기계’ 개념으로 대체하며, 행위하고 관계 맺는 인간 기계와 비인간 기계의 상호작용과 매개를 긍정함으로써, 포스트휴먼의 매체 생태계를 제안한다. 또한 단단한 물질로서의 기계, 설계에 따라 제작된 기계, 도구성에 착종된 기계 등의 상관주의 선입견을 비판한다. 본 논문은 기계지향존재론에 따라 대표적 상관주의 서사인 R.U.R.(1920)과 당대의 주요 로봇들을 다시 읽는다.
R.U.R.에서 로봇은 인간의 나르시시즘적 거울 논리를 충족시키지만, 거울의 해체를 통해 해방을 이룬다. 그리고 ‘일하는 힘’은 인간과 비인간 로봇을 수평적 존재론의 자리로 배치한다. 일하지 않는 인간은 생산성을 상실하며 자멸한다. 일하는 로봇은 모든 생산 관계의 중심에서 인간과의 도구적 관계를 해소한다. 당대의 실제 로봇인 에릭과 텔레복스는 한편으로는 설계 바깥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과의 도구적인 관계에서 인간과 대면하고 상호작용하면서 기존의 인간주의적 관계를 전도시킨다. 설계 바깥에서 인간의 의도와 다르게 작동하는 실제 기계의 위협적인 조건은 인간주의적인 거울의 균열을 만들고, 도구로사용될 때마다 기계 자체의 물질성은 인간에게 기입되어 그 결과 인간은 비인간과 종간횡단을 이룬다. 그러한 관계들은 다른 기계들과 무한히 연결된 회집체를 암시한다. 기계지향존재론에 따른 이러한 논의는 인간과 비인간 기계의 공동체를 위한 계기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