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에 나타나는 가족주의의 의미는 조선후기의 사회적 실상, 그중에서도 변화하는 ‘가족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묘파하고 있다는 데 있다. 조선후기는 국가의 향촌 지배력 강화와 약화된 재지사족의 경제적 지배력과 맞물린 가문의식의 성장으로 가족 관념을 사회와 국가로 확장시키는, ‘가족중심주의’ 혹은 ‘확대된 가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가족주의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에 등장한 가문의식과 새롭게 등장한 ‘가족중심주의’의 양상은 ‘가문소설’이라는 판소리 서사와 동시대 존재했던 문예 갈래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가족의 문제는 곧 국가의 문제이며, 당대 사회의 유교적 윤리의 틀 안에서 이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가부장의 부재는 새로운 가부장의 등장으로 질서 있게 교체된다. 윤리적 악인은 개과천선하거나 이야기 속에서 제거된다. 하지만 판소리 서사는 이러한 ‘가족중심주의’를 담아내지 않는다.
판소리 서사의 가족주의는 ‘보편적 가족주의’ 혹은 ‘가족지향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모습에 가깝다. 가족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보고, 가족이라는 운명 공동체의 행복 안에 가족 구성원의 행복이 함께 놓여 있다고 보는 보편적 가족주의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개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판소리 서사는 무능한 가부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폭로된 무능한 남성 가부장을 대신하는 존재는 하층 여성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조선후기 유교 윤리와 가족주의 이념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무능한 남성 가부장을 대신해서 가족을 지켜내거나 스스로 구성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 서사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유교적 윤리의식, 혹은 그 윤리의 내면화는 가족을 구성해서 생존을 모색하고자 하는 방편이었을 뿐, 유교 윤리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와는 거리가 멀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의식을 지키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이는 판소리 문학의 주인공들이 이러한 지배층의 윤리의식을 전유해서, 지배층의 사회적 정치적 행동의 문제점을 공박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