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운〉은 18세기 말 이후 사대부 작가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문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국문장편소설의 서사 관습을 차용해 영웅적 주인공의 성공 서사를 근간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층 내용에 있어서는 당대 사대부가 당면한 불안정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우선 경제적 결핍으로 표현되는 물적 토대의 취약함과 사회적 위상의 약화를 들 수 있다. 이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내외적 중추 역할을 했던 가장의 부재로 상징화된다. 다음으로 청운으로 표상되는 정치적 성공 이면의 부작용들을 들 수 있다. 주인공 두쌍성은 주색에 빠져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관리로서의 책무를 방기함으로써 명분과 신념 대신 사적 욕망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현실의 결핍들이 신념 체계의 확립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벼슬에서 물러나 백운의 세계에서 이상적 삶을 완성하고자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백운 역시 탈속의 정신적 고양 상태라기보다는 세속적 욕망의 연장과 지속을 위한 상상적 도피처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처럼 욕망과 감성에 좌우되는 두쌍성의 면모는 유가적 이념에 근거한 사대부의 지배적 남성성에 위배된다. 하지만 위계에 기반한 남성성이 약화된 대신 여성들을 중심으로 탈경계적이고 정서적인 관계가 부각된다. 이 과정에서 남주인공이 감정과 욕망에 솔직한, 보다 실존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것은 그동안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됐던 새로운 자질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남성성이 재구성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