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과 독립협회가 주도한 계몽운동과 정치운동 중 표출된 법 관념에 관한 기존 연구들은 법치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시각에 경도되어 이 경로 밖의 상황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당시 운동 과정에서 서양의 법 관념이 의식되고 있었으면서도 실제로는 법치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양상이 나타났음에 주목한다. 특히 서양문명을 중시하던 운동의 주도세력이 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유교적 담론을 동원하던 상황, 의회 설립 운동 과정이나 입헌과 비교될 수 있는 실천 과정에서 법을 문명화와 정치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던 상황, 대중적 정치운동 과정에서 법치적 요구가 주변화되던 상황에 유의하며 그 의미를 탐색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지 연구사에서 누락된 부분을 채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서양으로부터 법 관념이 수용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근대화의 방향을 예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 역시 본 연구의 중요한 목표이다. 새로운 지식과 제도가 소개되던 양상뿐만 아니라 이들이 기존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과 상호관계를 맺으며 독특하게 전개해간 양상에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