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헬러는 바이마르헌법의 특장점을 살리면서 오늘날의 ‘사회국가’의 범주에 포괄될 수 있는 내용들을 이론적으로 추동하고자 했고, 특히 ‘사회적 법치국가’가 헌법(학)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라 평가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사회적 법치국가는 헬러의 헌법이론체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주제(Leitmotiv)’로 일컬어지고 있기도 하다. 사회국가원리의 해명 및 법치국가원리와의 관계를 논하는 데 있어서 이에 관한 헬러의 입장이 현재에는 하나의 지도적인 위상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 및 그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의 지배적인 학설은 사회국가원리를 시장 경제 질서의 안정과 함께 묶어 경제적 측면에 한정하여 다루고 있고, 또한 법치국가와의 ‘배타적 연계관계’를 부각하는 방향으로 양자의 관계에 관하여 취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원리에 관한 언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기실 사회적 법치국가가 이야기되는 지금의 맥락은 에른스트 포르스토프가 첨예화하였다고 하는 이른바 ‘생존배려(Daseinsvorsorge)’의 언저리나 이를테면 ‘사회적 자본주의’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인데, 이 글은 이와 같이 특히 경제 영역에 한정되어 있는 오늘날의 사회적 법치국가에 관한 시각이 헬러의 ‘사회적 법치국가’의 의의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이라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이에 따라 이 글은 사회적 법치국가로 귀결되는 헬러의 헌법이론체계를 조감하고, 무엇보다 ‘현실과 유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그의 이론이 공식화되었던 무대인 1932년 10월의 국사재판소를 하나의 중요한 사례로서 참고하였다. 세칭 프로이센 대 라이히 사건으로 불리고 있는 이 1932년의 헌법쟁송에서 헬러는 대리인의 자격으로 법정에 서서 자신의 헌법이론이 현실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명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바가 있다. 헬러의 헌법이론 및 그의 헌법학자로서의 ‘실천’과 직결되어 있는 프로이센 대 라이히 사건을 함께 검토하면서 이 글은 그의 이론체계의 압축적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사회적 법치국가’의 본의가 ‘사회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법치국가, ‘민주적 법치국가’의 요청임을 분명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