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국은 한족만이 아닌 여러 소수민족을 포괄하는 ‘통일적 다민족국가’임을 주장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중국사를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만주족에 의해 지배받았던 청의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전통적인 한화(漢化)의 입장을 넘어 만주족을 포함한 여러 비한족 집단이 한족과 역사적 융합의 과정을 통해 ‘중화민족’을 구성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의 역사적 사실 부합성이다. 청조는 팔기(八旗)라는 독특한 조직을 통해서 지배집단으로서 만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여 이를 바탕으로 만주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드넓은 유목지역의 통합자이면서, 동시에 한족이 다수인 중원지방을 전통적 중화질서에 기반으로 하는 지배체제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을 거치며 팔기 제도의 문제가 노정되면서 청조는 “만한(滿漢) 연합정권”을 구성하여 양무운동과 변법운동을 통해 나름의 근대화를 추진하였지만 만한 사이의 갈등이 접점을 못 찾고 결국 신해혁명으로 붕괴되었다. 새로운 중화민국은 ‘오족공화(五族共和)’를 내세우면서 청 제국 내부의 여러 비한 종족을 그 구성원으로 포함하고자 하였으나 이는 당시 한족과 비한족들이 ‘중화민족’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생 중화민국의 영토를 드넓은 청 제국의 판도에 걸쳐 구성하고자 이들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포괄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비한족 집단들은 이전 청조 아래 주어졌던 정치적 승인이 철회되고 한화의 대상으로서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이 부정되었다. 따라서 한화를 넘어 융합을 전제로 한 오늘날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 논의에 대한 진지한 역사적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