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구려 호태왕비에 보이는 고구려인의 가치관, 정치이념, 학문과 사상 등을 살피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다. 호태왕비에서 한국사상의 원형과 관련된 사상적 편린들을 찾아낸 뒤 한국사상이 유학사상과 만나 어떤 양상으로 변화하였는지를, 주로 정치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였다. 한국사상사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호태왕릉비에는 광개토태왕의 통치철학, 특히 ‘이도여치’로 요약되는 고구려의 전통적 정치이념이 잘 나타나 있다. 뒷날 고구려의 전통사상이 유학사상과 만나 고구려 특유의 정치철학을 만들어냈다. 고구려의 천자의식은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天下觀)으로 이어졌다. 고구려는 천자의 나라이고 주변 제국(諸國)은 제후국이라는 의식이 호태왕비문의 밑바탕에 깔렸다.
고구려의 이른바 ‘팍스 고구리아나(Pax Goguriana)’의 통치 철학에는 고구려의 전통사상과 유학의 인의정신(仁義精神)이 융합되어 있다. ‘한국사상의 원형’이라는 차원에서 논할 수 있는 것들이 유학사상과 잘 어우러졌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