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480년 고구려, 신라의 강원도 영서, 동해안 지역의 전투들을 분석하는 것에 집중했다. 당시의 전쟁에 대해서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나왔지만 정선-삼척 지역의 연결을 기본으로 두거나, 489년 전쟁에 등장한 과현, 호산성에 대한 위치 비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 등이 있었다.
정선, 삼척, 강릉 지역을 살펴보고 강릉-정선 지역으로의 이동이 삼척-정선으로의 이동보다 원활했음을 지형, 고려·조선시대 역참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 이를 통해 당시 신라가 강릉을 시작으로 남한강을 따라 정선, 영월지역에 진출을 시도했다고 보았다. 또한 고구려가 481년 신라를 공격한 이동로를 동해안 루트였다고 파악했다. 이 전쟁에서 고구려가 패하면서 강원도 지역에서 지배력이 약화되었다.
489년 고구려가 공격한 호산성을 사료와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홍천으로 추정하였다. 횡성에서 5세기말 신라 토기가 나온 점, 모로성이 평창 모로현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481년 전쟁으로 고구려의 강원도 지역 영향력이 약화되자 신라가 대관령 이서 지역으로도 진출을 시도했다고 보았다. 신라의 이러한 진출로 춘천-홍천-원주 이동로의 지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고구려가 과현과 호산성을 공격해 점령했다. 이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지속하기에는 지형, 교통로의 문제가 있었기에 신라는 더 이상 진출하지 않았다.
신라가 남한강 유역뿐만 아니라 강릉 이서의 평창-횡성 지역으로의 진출을 꾀했다는 것은 5세기 말부터 강원도 지역의 지배 관계, 정세에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향후 신라의 강원도 지역 진출에 대해서 고민해볼 여지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