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천의 근대사를 전쟁과 군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독립을 향한 전통은 독립운동사의 관점을 넘어 군사사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독립전쟁의 전통이라 할 것이다. 전근대에서 근대로,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외부의 군사강점에 맞서 싸운 군사활동은 국군의 역사차원에서 포괄적인 운동사의 관점보다 의병전쟁에서 독립전쟁으로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전쟁은 다양한 군사시설을 포함한 군사흔적을 해당 지역에 남기게 된다. 이에 본 연구는 경북 영천에 주목했다.
본문에서는 먼저 영천의 의병전쟁과 독립운동의 전개를 살펴보았다. 경북의 여타 지역과 교통망이 연결되어 있던 영천은 다른 지역과 연대하여 을미의병과 정미의병을 일으켰다. 일본의 침략을 막고자 일으킨 의병전쟁은 이후 3‧1독립운동, 일본·만주·중국 등 국내외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다음으로 한반도에서 일본군의 군사활동을 검토했다. 일본은 한국주차군 제14연대와 한국주차헌병대를 영천에 파견하여 의병의 활동을 막았고, 식민지가 된 한반도에 일본군 2개 사단을 상주시켰다. 대구에 본부를 둔 일본 육군 보병 제80연대의 영향 아래 있었던 영천은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금호에 영천비행장을 건설하고 항공부대를 주둔시켰다. 영천의 주요 지점에는 고사포를 설치하고 부대를 편성했으며, 일본군이 주둔하고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헌병대도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군사시설은 현재까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