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고려시대 충재 발생의 여러 사료를 종합하여 그 특징을 고찰하고 고려인들의 충재에 대한 인식과 이를 활용한 다양한 정치적 의미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충재의 개념과 범주를 분류해 살펴보았고, 충재 기록의 사례를 분석하여 특징을 도출하였다. 종합적으로 고려인들의 충재 인식과 다각적인 정치적 함의를 고찰하였다. 그동안 고려시대 충재는 자연재해라는 시각에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 충재 개념은 문화곤충학적 시각의 분석과 고려사 오행지 분류를 중심으로 한 사상적 관념으로 나뉜다. 고려시대 충재는 곡식이나 산림 등에 피해를 주는 곤충류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충재 기록의 범위는 당대 정치적 해석이나 평가에 영향을 받아 취사 수록되었다. 고려시대 충재 관련 기사는 총 60건이 확인된다. 충재 발생의 월별 빈도는 5월이 가장 많고 7월, 4월, 6월 순으로 집중되었다. 특히, 많은 충재 요인으로 송충이 확인되는데, 이들의 생육 기간에 따른 결과이다. 충재가 발생한 지역은 고려의 변경 지역과 경기・송악 등 수도 개경 인근이 많았다. 지역의 발생 빈도는 외래종의 유입과 수도 인근 산림의 중요성이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충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다양하게 실시되었다. 일차적으로 충재가 발생한 지역의 지방관이 방재하였고, 국가 보고 체계를 통해 충재 발생의 내용이 중앙에 보고되어 국가적 차원에서 여러 대책이 실행되었다. 특히 피해가 극심하거나 지속되는 경우에는 국왕 근신이나 재신을 각 지역에 파견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충재를 재이로 인식하였다. 재이는 하늘의 징벌이나 정치적 혼란의 징조로 해석되었고, 경우에 따라서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논리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숙종대와 공민왕・공양왕대 충재 발생과 정국의 상관관계를 고찰해보니, 충재 기사는 국내외 정국의 긴장 관계를 반영하거나 왕조 멸망의 재이적 인식을 함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