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환은 근대 격변기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1908년경부터 연해주, 중국 북경 등지에서 활동하며 국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성환의 중국 관내 독립운동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09~1912년 중국 북경과 상해, 남경 등지에서 활동한 그는 신민회의 독립군기지 건설 일환으로 북경을 거점으로 삼고 안창호와 긴밀히 연락하였다. 1915~1932년간 조성환은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북경에서 정착을 돕고 유학생들을 지원했다. 그리고 대동단결선언에 참여하며 신정부 건설을 현실화하고자 노력했다. 1919년 4월 연해주 및 만주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그는 만주에서 대한군정서에 참여하며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25년경 북경으로 돌아와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하였다. 민족유일당 운동을 통해 민족대당 결성에 함께 하고자 했으나, 1930년대 들어 임시정부의 존립이 위태로워지자 이에 복귀하였다. 1932년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서 임시정부 수호에 본격 참여하게 된 그는 1935년 한국국민당을 창당하고, 임시정부 군무장을 맡게 되었다. 임시정부의 군사활동을 주도하게 된 그는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임시정부의 군대 창설에 앞장섰다. 군사특파단 주임, 군무부장을 맡으며 한국광복군 창설을 진두지휘하였다. 임시정부 수립 당시, 그리고 복귀 후에도 군사 부서의 책임자로 활동한 조성환은 1944년 임시정부 개편으로 군무부장에서 물러나면서도 임시정부 군사활동의 밀알로서 역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