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인 노근리사건으로 어머니가 사망한 피해생존자들의 구술생애자료를 분석한 것이다. 어머니가 사망하게 된 맥락과 어머니의 부재가 가족 내 성 역할과 자녀들의 생애에 미친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전쟁에 의한 피해의 젠더적 양상을 밝히고자 했다. 지금까지 전시(戰時) 여성의 피해는 살아남은 자, 전쟁미망인 등으로 여겨짐으로써 노근리사건과 같이 한국전쟁에서 여성, 특히 어머니의 사망은 주목될 수 없었다. 연구 결과, 부계 중심의 가부장적인 가족질서와 젠더 규범 속에서 남성들은 가족을 남겨두고 피난을 떠난 경우가 많은 반면에, 여성들은 어린 자녀와 시부모 등을 돌보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머물러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어머니의 사망에 의한 가족의 위기는 가사 및 돌봄노동을 딸이 대신하거나 아버지가 재혼을 하면서 새어머니에 의해 대체되었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가부장적인 가족의 위기는 어머니의 성역할을 아버지보다는 다른 여성이 수행함으로써 가족 내 성별에 따른 역할 분담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해결 방식은 자녀가 성장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친밀성과 돌봄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재혼 가족의 딸은 친어머니의 부재를 자원 및 기회 배분의 상실로 여김으로써, 결혼 후 강한 모성을 실천하는 등 생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아들은 어머니 부재를 언급하지 않거나 생애에 미친 영향이 없는 것으로 의미화했는데, 이는 어머니의 부재가 삶의 경로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친 것을 오히려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한국전쟁기 노근리사건 에서 여성, 즉 어머니의 사망을 주목하는 것은 한국전쟁에 의한 피해와 희생의 젠더적 양상과 그것이 갖는 의미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