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있고, 법학이 있는 곳에 법학방법론이 없을 수 없다. 법학은 고대부터 개별 사안에 대한 올바른 법적 해결로 인도하는 다양한 사고방법을 발전시켜왔다. 법학방법론이야말로 법학의 작업 현상을 반영하며 법학의 학문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법학방법론의 전문분야화(Professionalisierung – H.-M. Pawlowski)에도 불구하고 법학방법론의 기능과 그 한계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학방법론이 현실에서 불필요한 것이라거나 실정법의 학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방법론을 익히게 되므로 법학방법론을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학방법론이야말로 법조인이 반드시 구비해야 할 소양이며 가장 실용적인 법학 분과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해석론이 지배하는 학계 현실을 감안 하면 실정법의 학습만으로 방법론을 익힐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법해석론 및 법리는 방법적으로 정당화된 법해석과 법형성의 산물이다.
법적 추론과 같은 실천적 추론에서는 극단적 합리주의와 완전한 비합리주의 사이에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 법규범에 대한 다양한 해석가능성이 곧바로 법적 결정의 임의성과 동일시되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수용가능한 해석들에 대한 선택의 폭이 존재하고 이러한 선택의 폭 내에서 해석자의 선이해에 따라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선택의 폭 바깥에는 객관적으로 수용불가능한 영역이 훨씬 더 넓게 존재한다. 따라서 법관 개인의 선입견이나 주관적 평가의 개입 가능성을 판결의 비합리성이나 자의성과 동일시되어서는 안된다.
현대 법치국가에서 법해석방법의 선택이 법적용자의 자유재량에 완전히 맡겨져 있지는 않다. 가령 법관의 경우 해석방법의 선택에 있어서 죄형법정주의나 권력분립 원리와 같은 제도적·절차적 제약을 받는다. 이 점에서 오늘날 법학 방법의 문제는 헌법 문제이기도 하다. 법령해석 방법론이나 법발견론을 비롯한 법학방법론은 법관의 해석재량 및 결정재량을 축소함으로써 판결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준다. 법학방법론의 과제는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 순 주관적 영역을 가급적 줄이고 해석을 가급적 객관화·합리화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법학방법론은 법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넘어 법의 인식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이들 주제는 궁극적으로 입법자와 법적용자의 권한 배분, 법령 해석의 기준 내지 관점, 사회현실 및 법률 배후에 자리 잡은 이익에 대한 고려, 법관의 기능과 역할과 같은 법이론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따라서 법학방법론은 법이론(Rechtstheorie)적 성찰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법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결국 법학방법론은 법 인식의 본질이나 방법을 탐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법의 효력이나 법이념과 같은 법철학의 근본문제를 숙고하게 만든다. 리펠(H. Ryffel)의 표현을 빌리면 방법론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철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법학방법론에서 실정법학과 법철학의 제휴(K. Larenz)를 엿볼 수 있다. 드워킨 역시 ‘법철학은 사법의 총론이며 법적 결정의 묵시적 서장’이라는 말로 법철학과 법학방법론의 긴밀한 연계를 시사한 바 있다. 법학방법론은 응용법철학의 일부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법철학은 법학방법론의 서장(序章)이자 종장(終章) 이다.
법학방법론의 토대가 법철학이고, 법철학의 본령이 분석(分析)과 비판(批判)에 있다고 한다면 법학방법론 역시 분석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비판적인 성찰이 보태 져야 한다. 또 해석론 뿐 아니라 입법론의 관점에서, 바꿔 말해 기술적 접근방법뿐 아니라 규범적 접근방법을 통해 주요 쟁점들이 종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법학방법론은 결코 기술적 방법론에 그칠 수 없고 규범적 방법론을 지향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적 의미의 법학방법론은 법관의 판결을 정당화하고 법관의 사법권력을 제한하기 위한 정당화이론(Legitimationslehre)이면서 동시에 법적 결정을 근거 짓는 논증이론(Argumentationslehre)이고, 나아가 법학방법의 내용적인 정의요청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가치관련적인 정당화이론 및 논증이론이 다. 또 법학방법론은 법규범을 개별 사건에서 헌법에 맞게 합리적으로 통제가능하게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법적 사고는 법학과 법실무 모두를 지배하고 또 지배되기 때문에 법학과 법실무가 그 방법론에서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 법학을 위한 방법론과 법실무를 위한 방법론이 다를 수 없다. 오래전 사비니(F. C. von Savigny)가 잘 지적했듯이 이론과 실천이 완전히 분리되면 필연적으로 이론은 공허한 유희로, 또 실천은 단순한 수작업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론은 실무적이어야 하고 실무는 학문적이어야 한다. 법학자에게는 실무지향적인 방법론이 필요하며, 법률가에게는 이론지향적인 방법 론이 필요하다. 이들이 서로 교차하고 수렴함으로써 법학방법론은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