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발표된 한국 SF(science fiction) 중에서 외계 행성을 지구처럼 만드는 테라포밍(지구화, terra-forming) 서사가나타나는 작품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외계 행성과 지구에서 생명공동체를둘러싸고 벌어지는 면역의 생명정치(bio-politics)에 주목하고자 한다. 지구인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테라포밍하는 서사들과 망가진 지구를 복원하는 리테라포밍(재지구화, reterra-forming) 서사에는 ‘면역의 생명정치’라고 부를 만한 현상들이 그려진다. 박해울의 작품에서는 테라포밍 과정에서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방식의 생명권력이 거부되고, 정세랑의 작품에서는 지구를 복구하기 위해 ‘파르마콘’의 역할을 담당하는 거대 지렁이가 투입된다. 그리고 김초엽의 작품에서는 인간들과 외계 존재 사이에서 ‘공동 면역’이 구성된다. 이러한분석을 위해 ‘상호 호혜성’과 ‘상호 의무’를 중심으로 ‘공동체(community)’와 ‘면역(immunity)’을 함께 사유한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의 이론을 참조할 것이다. 현대 면역학의 영향을 받은 에스포지토는 방어와 부정을 중심으로 면역을 사유하던 근대의 면역화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면역을 상호침투와 생성의 영역으로 새롭게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질적인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생명공동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베풀어야하는 의무를 다할 때 유지됨을 보여준다. 팬데믹 시기에 발표된 한국 SF들과에스포지토의 이론은 서로 공명하면서 이방인을 항원처럼 여기며 배척하는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더불어 생명의 그물망 속에서 이종(異種)의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내어주고 다른 존재들을 받아들이는 일임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