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특별법인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가맹사업법’이라고 한다),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규모유통업법’이라고 한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이라고 한다),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리점법’이라고 한다) 등은 모두 적용범위가 넓어서 하나의 사안에 여러 법이 동시에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 법을 형식적으로 적용하여 위반행위를 중첩적으로 인정할 경우 거래 실체와 부합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규모유통업법과 하도급법의 관계에 있어서, 대규모유통업법 제정 이후에는 유통업체에 대하여 하도급법이 적용된 사례가 드물었음에도,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유통업체가 PB(Private Brand) 상품을 납품업체에 제조위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행위에 대하여 하도급법을 적용한 바 있다. 이 문제는 대규모유통업법 제정 이후에는 주로 대규모유통업법이 적용되던 유통 분야에 하도급법을 전면 적용하는 것이 법체계상, 법집행상 정당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하도급법과 대규모유통업법을 포함하여 공정거래특별법 사이에 면밀한 관계 조정 조항이 필요함에도 대규모유통업법의 입법과정에서 그러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 제4조는 그 입법연혁에서 알 수 있듯이 대규모유통업법과 하도급법의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입법이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유통 분야에 하도급법을 전면 적용할 경우 납품업자와 유통업자 사이의 거래에서 준수되어야 하는 거래질서는 대규모유통업법이 규율하고, 가맹본부인 유통업자와 가맹점 사이의 거래에서 준수되어야 하는 거래질서는 가맹사업법이 규율하던 기존의 거래질서와 거래현황을 합리적 사유 없이 크게 변경해야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최소한 대규모유통업법 제정 이후에는 유통 관련 기업의 실무는 대규모유통업법에 맞추어 정비되어 유지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대규모유통업법 대신 하도급법을 유통 분야에 전면 적용할 경우 기존의 거래질서와 거래현황을 크게 변경해야 하며, 이는 유통업의 특수성이나 유통 거래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거래공정화의 목적을 거래의 실체에 더 가까운 법률인 대규모유통업법(납품업자와 가맹본부인 유통업자), 가맹사업법(가맹본부인 유통업자와 가맹점)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단지 문언상 포섭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하도급법을 적용해야 할 당위성이 어디에 있는지 문제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유통 분야에 대한 하도급법 적용은 대규모유통업법과 하도급법이 상충되지 않고, 대규모유통업법에 의한 보호가 흠결되어 있어 하도급법에 따른 보호가 불가피한 경우로 한정될 필요가 있다. 특정 행위에 대하여 하도급법과 대규모유통업법이 상충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산업별 특수성을 반영한 대규모유통업법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대규모유통업법 제4조의 ‘제조위탁’ 개념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방안이나 개별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사안별로 하도급법 적용이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