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임진왜란 때 사로잡혀서 포로 생활을 같이한 특별한 경험을 권두문과 권주 부자가 기록한 『호구일록(虎口日錄)』과 『평창일기(平昌日記)』를 중심으로 기록과 기억의 거리를 탐색한 것에 해당된다. 두 텍스트는 공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가 기록한 것이기에 같으면서 다른 지점이 포착될 가능성이 높다. 권두문 부자가 경험한 일정의 핵심은 8월 7일~9월 13일까지의 기록이다. 이는 부자가 포로로 잡혀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탈출하여 돌아온 기록이 중심을 이루며, 아버지와 아들의 공통 경험에 기반한 것이기에 기록 일자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
『호구일록』과 『평창일기』의 서술 양상을 살펴보면 자세한 상황 서술과 경험 중심의 축약 서술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호구일록』은 당시의 정황, 대화, 환경 묘사, 감정 서술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펼쳐져 있어 전체적인 흐름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도록 서술되고 있다. 반면 『평창일기』는 사실의 기록에 입각한 서술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 마치 신문 기사를 보는 듯 인물, 사건, 시공간을 중심으로 서술하여 객관적으로 기록하려는 의식이 도드라지고 있다. 이러한 서술 양상은 두 텍스트 전반에 걸쳐 확인되며 확연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호구일록』과 『평창일기』라는 두 텍스트를 통해 기록과 기억에 대한 기록 주체의 의식을 읽을 수 있다. 『호구일록』의 기록 주체인 권두문은 임진왜란이라는 재난 상황에 대한 기록보다는 신하된 입장으로 국란에 대처하는 자세를 기록하는데 중심을 두고 있는 반면, 『평창일기』의 기록 주체인 권주는 자식된 입장에서 포로 상황을 기록하는 데 중심을 두되, 당시의 기억을 환기할 때 견문한 실제에 기반하여 언제, 누구와 어떻게 행동하였는지를 중심으로 기록하려는 의식이 엿보인다.
두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을 기억하는 방식에 차이가 나타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차이는 단순히 기록 주체가 다르다는 점으로 이해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록 주체를 둘러싼 다양한 역학이 기억하고 기록하는데 영향을 끼쳤으며, 두 텍스트의 존재는 공통의 시공간을 경험하되,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는 다르게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