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연상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 두 개의 삶〉에서 출발하여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으로 탄생한 웹툰 『지옥』을 살펴보고, 작품의 주제인 ‘믿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목표로 한다.
『지옥』의 핵심은 갑자기 나타난 미지의 존재가 인간에게 죽음을 고지하고, 예정된 시간이 되면 괴력의 존재가 나타나 고지받은 인간을 죽인다는 설정에 있다. ‘새진리회’는 죽음의 ‘고지’를 신의 뜻으로 받들면서, 죽음의 시연과 희생양 만들기, 법과 국가의 무력화를 통해 종교를 앞세워 권력을 구축한다. 새진리회는 죽음의 고지가 우연이 아니라, 죽음의 고지를 받은 사람에게 죽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화살촉과 결탁하여 미지의 존재가 행하는 죽음의 집행을 정당화한다. 그리하여 죽음의 고지는 신의 의도이자 필연으로 받아들여진다. ‘소도’ 는 이처럼 권력화된 새진리회의 교리에 저항하면서, 고지를 받은 사람들의 죽음이 밝혀지거나 전시되지 않도록 은밀하게 조력한다.
그러나 신생아가 죽음의 고지를 받게 되자, 새진리회와 화살촉이 구축한 종교가 되어버린 ‘믿음’에 균열이 일어난다. 이러한 설정은 페스트에 걸린 아이의 죽음 앞에서 신에 대한 반항을 보여주었던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감염병으로 인해 아이가 사망하는 『페스트』와 달리, 『지옥』은 부모의 저항과 노력 끝에 극적으로 아기가 살아남는다. 아이의 생존이라는 결말을 통해 새진리회뿐만 아니라 소도조차도 죽음의 고지가 필연이라는 ‘믿음’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작품은 필연에 대항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호소한다. 이러한 『지옥』의 세계관은 예정조화설을 주장했으면서도 신이라는 필연성 앞에 여전히 우연성과 자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라이프니츠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리하여 재난의 시대에 『지옥』은 맹목적 믿음과 확증 편향이 지배하는 ‘지옥’에 대응하는 인간의 자율적 의지를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