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과 조정은 당사자에게 분쟁 해결의 절차주도권·절차형성권이 전적으로 맡겨져있는 분쟁 해결제도로, 분쟁 해결의 주체는 협상과 조정의 당사자들이다. 이 때문에 서구의 조정(mediation)에서 조정장의 직권으로 조정을 한다는 식의 표현은 등장할 여지가 없다.
싱가포르 협약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조정(mediation)은 기본적으로 1인의 조정인이 당사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 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화해를 촉진하는 기능을 하는 촉진자(facilitator)로서의 조정인이지, 3인 조정부의 장인 조정장으로 절차를 주도하고 당사자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직권으로 조정갈음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조정절차를 통한 당사자 간의 합의에 민법상 화해의 효력을 인정하는 데 그친 일부행정부 산하 조정위원회의 조정과 달리, 조정에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 또는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인정한 상당수 행정위원회의 조정은 국가 분쟁 해결체제의 정합성과 절차의 불투명성의 면에서 문제가 많다. 강력한 행정규제는 규제대로 두고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하는 행정부 산하 조정위원회의 조정은 잘못운영되면 당사자 일방을 협박(coercion)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기 쉽다.
이에 싱가포르 협약의 비준을 준비하고 있는 현시점부터라도 mediation과 전혀 다른 제도로 운영되어 온 우리나라의 민사조정법(실질은 법원의 민사사건 신속 종결을촉진하는 법)을 바로잡는 민사조정절차법 또는 싱가포르 조정에 대한 이행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즉, 협약 비준 전에 싱가포르 협약과 모델법에서 제시한 기준을 존중하는 기존의 재판 유사 조정제도와 절차 자체가 다른 우리나라 조정절차의 표준이될 절차법(節次法)의 제정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협상·조정 군(群)과 중재·재판 군(群)의 차이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두 군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정절차를 재판절차 또는 심판 절차에 속하는것으로 이해하면 이론적 문제는 물론이고 실제 사건 해결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 조정의 현실은 조정절차에 별문제가 없다고 하는 인식이 지속되고있다. 따라서 조정 실무에서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당사자의 자율적 합의를 촉진한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표방한 표어일 뿐 많은 조정인은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이른바 강제조정)을 조정의 최고의 장점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조정절차의 원칙이 조정을갈음하는 결정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경우 조정인은 소송에서 판사도 일정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심리를 생략한 심판(판결)을 너무 쉽게 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국내 조정제도의 난맥상은 민사조정법에 기초한 법원의 민사조정에서 그 기초가 형성된 측면이 있다. 강제조정이라는 용어를 내용은 그대로 둔 채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으로 명칭만 바꾸거나, 수소법원의 조정제도가 부적절하다고 하는 의견을 상당한 부분수용하면서도 거의 동일한 내용의 수소법원의 화해권고결정 제도를 신설한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법원이 재판 또는 심판을 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 재판 외의 분쟁 해결 방법까지도 법원에서 할 수 있고 오히려 법원이 주도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인식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민사조정은협상을 통한 조정 방식의 싱가포르 조정절차 이행법 제정의 필요성 219 기관 또는 기구 확대용의 제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행정부 산하 각종행정조정위원회가 만들어진 목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협상/조정 군(群)과 중재/재판 군(群)의 본질적인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법원과 행정조정위원회의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는 기본적인 토대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본 논문에서는 외국의 조정제도를 전제로 한 협상/조정 군(群)과 중재/ 재판 군(群)의 분류가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조정제도의 실정을 고려하여 두 군을 구별하여 보았다.
이러한 분류를 통하여 두 군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식함으로써 법원은 재판 또는 심판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고, 행정조정위원회의 민·상사 분쟁에 대한 조정(mediation) 역시 행정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제도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종국적으로는 이러한 논의에 기초하여 해당 기관과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조정제도의 남설로 초래된 재정적 손실을 줄이고, 국가 전체 분쟁 해결 시스템의 정합성을고려하여 분쟁당사자들의 자기 결정권 또는 주체성을 회복하는 조정 본연의 제도로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이처럼 실태조차 파악하기 힘든 국내 조정제도 운용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모두모아 민간이 운영하는 세계적인 조정기관 또는 조정기구가 태동할 수 있도록 국가가지원하는 국가분쟁 해결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지금이라도 그 내용을민사조정절차법 또는 싱가포르 조정에 대한 이행법에 충실히 반영하는 입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