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남경은 양주 지역에 문종 21년에 처음 건설되었다. 그 기반은 부왕 현종대에 마련되었다. 현종은 자신이 잠저시에 머문 양주 지역의 범위를 확대하고, 지위를 높였다. 현종의 3남으로 형들을 이어 국왕이 된 문종은 형들보다 더 현종 계승 의식을 뚜렷이 하였다. 부왕이 건설하고 부왕의 원찰이 된 현화사를 자주 행차한 것은 그 일환이었으며, 이에 더해 양주 지역을 남경으로 승격시켰다. 이를 통해 문종은 부왕 현종 계승 의식을 표출할 수 있었다.
문종의 아들 숙종은 조카 헌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때문에 정통성 측면에서도 부왕 문종을 계승했다는 것을 강조해야했다. 이 때문에 숙종은 문종이 무려 12년에 걸쳐 건설하고, 중요하게 생각한 흥왕사를 자주 행차하였다. 특히 다른 왕들의 기록과 달리 숙종은 매해 문종의 기일에 흥왕사에 행차하여 기신행사를 치뤘다. 이는 문종과 자신을 잇는, 즉 문종 계승을 대외에 더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부왕 문종이 현종을 기리기 위해 승격시켰으나 곧 철회된 남경을 재건설하였다. 숙종은 이 일을 위해 주위의 추천을 통해 남경을 부각했으며,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남경을 건설하였다.
이는 정통성이 부족한 숙종이 그 전대의 왕들처럼 부왕의 기신도량을 개최하여 부왕 계승의식을 공고히 한 것이며, 부왕 문종의 개혁 사업의 뒤를 이어 남경을 건설한 것이다. 이는 부왕 계승의식을 너무나 잘 드러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