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는 미래의 초현대적 세계를 혁신적인 영상미로 구현하면서 영화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SF영화라는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영화가 그리고 있는 미래비전 속에는 의외로 미래와는 거리가 먼 과거를 담지하거나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저 주변부적인 것으로 치부하기 쉬운 이런 요소들은 실제로 영화의 내용 층위에서 인물과 공간에 과거의 성격을 각인시키고, 사건이 전개되는 동인과 동력으로 기능한다. 더 나아가 미래와 과거의 중첩을 통하여 이 영화가 만들어진 20세기 초 당대가 직면하고 있던 기술문명과 사회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문제도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그러면서 이 세 가지 문제의 해결 또한 과거를 토대로 하여 모색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중세의 기독교적 질서와 유기체적 공동체의 복원이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혼란스러운 독일사회에서 중세를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유토피아적 상태로 간주하고 그 복원을 주장했던 보수주의 담론과 그 맥을 같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