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G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은 트라우마와 멜랑콜리의 유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작품에 그려진 서술자의 여행은 한편으로는 자기 고향으로의 여행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여행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건과 사람 속에서 서술자는 잃어버린 근원, 즉 소멸된 과거와 이로 인한 기억 불가능을 확인한다. 이는 곧 생성과 소멸, 다가감과 다가갈 수 없음, 삶과 죽음이라는 이원성의 공존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으로 이해되며 서술자는 트라우마와 멜랑콜리의 삶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모순적이며 이원적인 감정들 속에서 서술자는 자신의 존재론적 혼란과 더불어 구원 가능성을 인지한다. 서술자에게 트라우마와 멜랑콜리라는 감정들과 이로 인한 현기증은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심리적이며 의식적인 인식 대상이다. 즉, 서술자는 트라우마와 멜랑콜리라는 압박과 불안 그리고 공포를 인지하는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