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에 대한 한국 종교학계의 논의는 그 연구범위나 접근방법에서 다양하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대다수의 선행 연구가 제도/전통 종교가 구축하고 관리하는 성지순례를 중심으로 순례를 종교적 목적의 여행으로 그리고 신앙심 고취와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위한 종교적 의례로 규정하면서, 종교적 동기와 의미에방점이 찍혀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은 이러한 순례의 개념화가 동시대 관련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과연 적절하며 생산적인가이다. ‘순례’를 ‘종교적’ 현상으로 제한하여 이를 소위 유사한 현상으로부터 구분하려는 학문적 태도는후기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반면 (세속적) ‘관광’이 대중화되고그 영역 또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에 맞추어 세분화하면서 보다 복합적이고광범위한 기능을 갖게 된 현실과는 괴리를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논문은 순례 담론의 확장 그리고 재구성이라는 맥락에서성지순례와 다크 투어리즘의 교차지점을 조명함으로써 동시대에서 순례와 관광이 지닌 다양한 함의를 탐구하고자 한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자연)재해, 전쟁, 집단학살, 대형 사고와 같이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죽음과 고통으로 점철된 장소에서 ‘의미 있는’ 혹은 ‘특별한’ 경험을 하려는 관광 형태를가리킨다. 본 글은 관광학은 물론이고 사회과학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영역으로자리 잡은 다크 투어리즘을 성지/순례 연구와 어떻게 접목하여 동시대 순례 현상에 대한 보다 확장된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의 시작이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성지순례와 다크 투어리즘을 개별 연구영역이나 독립된현상으로 보기보다, 후기 현대라는 독특한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두 학문 분야가서로 만나고, 관련 현상들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우선 동시대의 순례와 다크 투어리즘 현상을 이해하는데 생산적이라고 판단되는 학계의 관련 논의와 주요 이슈를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해미순교성지를 하나의 사례로 한국 가톨릭교회가 개발⋅운영하고 있는 순교성지와 성지순례 형태가 내포하고 있는 다크 투어리즘적 요소를 확인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