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근대 뮤지엄은 초창기부터 종교의 건축물을 의도적으로 모방했고, 뮤지엄의 공간은 종교의례의 공간처럼 경계 지워지고 특정한 프로그램을 따라 세심히설계된 공간이었다. 이러한 뮤지엄 방문은 종종 종교경험에 빗대어 묘사되기도하며, 최근에 와서는 종교가 아니더라도 영성적인 것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이뮤지엄을 통해 시도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글에서는 뮤지엄의 성스러움을 종교학의 성스러운 공간에 관한 기존 논의를 넘어 어떻게 새롭게 접근해볼수 있을지 가늠해본다.
성스러운 공간에 관한 지난 세기 종교학 담론은 공간의 성스러움이란 것이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의미화 작용 혹은 의례 행위를 통한 성화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전개해왔다. 이러한 성스러운 공간의 유동성은 단지 특정 종교의 장소만이 아닌 다른 비종교적 장소들 역시성스러운 공간의 논의를 적용해 분석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그러나이러한 방식은 공간의 성스러움을 이미 기존 종교학에서 논의한 ‘성스러운 것’의특징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실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성스러움의 역동성을 충분히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글은 브루노 라투르의 ‘연합체의 사회학’의 논의에서 힌트를 얻어 뮤지엄이라는 비종교적 장소의 성스러움을, 여러 다양한 인간-비인간행위자들의 ‘연합체’로서의 성스러움으로 가정한다. 이 글은 실제 전시회와 뮤지엄의 예를 통해, 뮤지엄에서의 성스러움이 특정 전시기획 의도나 특정 종교의오브제, 특정 종교의 성스러움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인간-비인간 행위자연결망을 통해 일어나는 번역 과정, 그리고 그 번역 과정의 ‘관계성’, ‘사건성’, ‘분산성’으로 인해 언제나 예기치 못한 새로운 모습의 성스러움으로 재조합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 글은 이러한 검토를 통해 행위자를 따라가고 인간 및 비인간 행위자의 연결망을 추적하는 연구가 종교학의 성스러운 공간에 관한 논의를 좀더 보완하고새로운 방향을 열어줄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