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고학에서 조몬시대의 무덤과 야요이시대의 무덤의 의미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되고 있다. 조몬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야요이시대까지 조몬문화의 요소가 강하게 잔존하는 동일본지역과 한반도로부터의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서일본에는 지역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크게 본다면 매장 자세는 굴장에서 신전장으로의 변화, 기원이 다른 집단의 공동체 결속을 다지기 위한 무덤에서 사회적 계층을 보여주는 무덤으로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조몬시대 사생관과 무덤에 대한 인식이 대륙의 문화적 영향으로 여러 변용을 겪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몬시대 전통의 굴장과 재장 과정을 유체에서 영혼이 떠나서 방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과 영혼이 유체에서 벗어나 조령(祖靈)이 되기를 기원하는, 서로 상반된 의도를 가진 유체 처리 방식이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지극히 ‘주술적’인 측면으로 조몬시대의 무덤과 장제를 해석하고 있는 것에 비해 야요이시대의 신전장과 재장에 대해서는 도작 농경 문화의 영향과 소규모로 분산되어 있는 집단이 각 선조의 유해를 하나로 합치는 과정을 통해 집단의 결속을 의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고고학에서 논의되는 조몬시대, 야요이시대의 매장 자세와 재장에 대한 이해는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다양한 측면에서의 해석은 아직 장제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 고고학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