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강남역 이후의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 때문에 ‘번아웃’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현상을 분석한다. ‘번아웃’이 만들어지는 배경과 그 내용, ‘번아웃’이 다뤄지는 모습을 분석함으로써 강남역 이후 운동이 실행되어 온 조건들과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개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번아웃’을 느낀 적이 있는 페미니스트들을 심층 면담했다. 연구 결과, ‘번아웃’은 부정적 정동을 포괄하는 용어로, 페미니즘과 연관된 고통스러운 상태를 소통하게 하는 기표다. 젠더 기반 폭력의 가시화와 반페미니즘적 정서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에게 사회는 안전하지 못한 곳으로 인식되었고, 상대적으로 페미니스트 공동체는 안전한 공간으로 의미화되었다. 구성원 간의 동질성이 안전을 담보한다는 기대로 인해 ‘노선’ 갈등이 격화되었고 이는 역설적으로 고립을 만들어냈다. 또한, 페미니스트 간의 문제가 ‘페미니즘’ 자체의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이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은 고통스러워했지만, 페미니즘은 안전한 공간이라는 이상이 깨지면 반페미니즘적인 공격이 더 심해질 것을 두려워해 고통을 발화하지 못했다. 고통은 사회적 차원에서 설명되지 못하면서, 정신의학을 통해 ‘번아웃 왔다’는 말로 표현되었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본 연구는 강남역 이후 페미니즘 운동이 신자유주의적 불안정성 위에서 동일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속에서 페미니즘은 안전과 동일시되었음을 포착한다. 또한, 이러한 구조가 ‘번아웃’을 만들었음을 드러내고 페미니스트들의 고통을 사회화함으로써,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지속할 방법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