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의 탕구정전협정으로 중일간에 군사적인 충돌이 줄었들었으나, 일본은 1935년부터 화베이분리공작을 기점으로 중국에 대한 침략을 재개하여 중일간의 긴장상태는 다시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에 일본은 만주국에 대한 치안과 군비를 강화하여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고자 했다. 1936년 후반으로 갈수록 중일 관계가 급속하게 악화되고, 중일전쟁 발발 직전인 1937년 6월에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일본 관동군과 소련군이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일본은 중국 동북지역의 군사개편을 실시하였으며, 만주국군에 대한 개혁도 군경중앙기구의 통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1936년 후반에 일본은 만주국의 군비를 정비하는데 많은 예산을 들여 만주국군들의 무기 보유 상황은 이전보다 배 이상으로 향상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1936년을 전후로 총력전에 대응하기 위한 만주국의 치안숙정을 단행했다. 주요한 내용은 만주군과 외무성경찰의 치안숙정계획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이 치안숙정 안에는 사상공작을 포함하고 있어서 국민생활의 원리를 진작하면서 생활에서 자국주의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내성적인 비판에 근거한 기본사상전을 추진했다. 이와 함께 전시사상전을 진행하여 전쟁 전의 급박한 환경에서 사상적 총동원체제를 강화하고자 했다. 이처럼 일본은 이미 1936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중국과의 전면전을 위해 만주국에 대한 치안과 군비를 강화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루거우차오사건이 발생했을 때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