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흡(金泰洽)은 일제강점기 주로 포교승으로 활동했다. 그는 1920년대 장기간 일본에서 유학했고, 그곳에서 보편 종교로서 불교를 학습했다. 1920년대 후반 귀국 후 강연뿐만 아니라 신문과 라디오 방송과 같은 매체로 불교를 선전했다. 김태흡은 불교를 선전하는 과정에서 불교를 재해석하였고, 불교에 근대적 보편 가치를 부여했다. 특히 그는 1920년대 후반 적극적으로 서양의 철학 사조나 사회 사조를 소개하면서 그것을 불교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불교에서 보편 가치나 보편 관념을 찾아냈다. 그는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등 서양 철학자뿐만 아니라 유물·유심 논쟁 등 철학의 개별 주제와 개인주의, 공리주의 등 사회 사조를 불교의 시선에서 평가했다.
김태흡은 칸트윤리학의 ‘자유의지’와 ‘선의지’ 개념을 소개하면서, 여기에 상당하는 개념으로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에 등장하는 ‘자정기의(自淨其意)’란 표현을 거론했다. 그는 ‘윤리 주체’로서 근대적 개인을 불교의 원리로 양성하고자 한다. 또한 그는 당시 불교와 유사성이 강조된 쇼펜하우어 철학을 염세주의로 소개하고, 대승불교는 오히려 구세론임을 주장하여 불교의 ‘입세’ 성격을 강조했다. 김태흡은 유물론과 유심론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사회관을 직접 드러했다. 그는 유물·유심 논쟁을 세계의 근원이 물질이냐 정신이냐 하는 차원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유물론은 배금주의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하고, 유심론은 허무주의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김태흡은 불교는 유심론도 아니고 유물론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특히 불교의 진여(眞如, tathātā)가 유물론적 실체론을 타파하고, 유심론적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개념임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