惺窩 李基馨은 조선 말기에 태어나 일제 식민지 시절을 온전히 겪었던 경상북도 성주 출신의 선비였다. 그는 가학을 바탕으로 張福樞, 李承熙 등 碩儒들의 문하에서 학문을 성취하였으며, 국망의 시절에는 은둔강학을 통해 일제에 소극적 저항을 하였다. 또한 1919년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보내는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여 선비로서의 책무를 다하였고, 1934년에 일제가 儀禮準則을 반포해 조선의 전통예법을 파괴하려 하자 조선총독에게 서신을 보내 강상의 죄를 꾸짖고 전국의 서원에 통문을 내어 이 일을 거부할 것을 독려하였다. 그는 性理學 心性論의 관점에서, 寒洲 李震相의 心卽理說이 退溪 李滉의 心合理氣說과 다르지 않음을 확신하고 당시 주류에서 소외된 한주의 학설을 견지하여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문장가로서도 명성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성리학자들이 문장의 가치를 부정하던 인식과 달리 韓愈와 柳宗元의 道文一致觀을 긍정적으로 수용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