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조선 정부는 외교적인 목적 달성과 근대문물을 배우기 위해 다양한 외교 사절단을 해외로 파견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민영환 사절단은 인천을 출발해 상해-요코하마-밴쿠버-뉴욕-리버풀-런던-플나싱-베를린-바르샤바 등을 거쳐 러시아의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모스크바에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하고 외교 임무를 마친 민영환 일행은 페테르부르크의 산업시찰을 마치고 현지를 출발해 시베리아 횡단철도 노선을 따라 이르쿠츠크-바이칼호-울란우데-치타-블라고베시첸스크-하바로브스크-블라디보스토크 등을 거쳐 인천항으로 귀국하였다. 일행 중 윤치호는 프랑스 파리에 남아 석달 간 머무른 후 마르세유에서 시드니호를 타고 이른바 ‘제국항로’를 따라 포트사이드-콜롬보-싱가포르-사이공-홍콩을 거쳐 상해에 도착하였다.
본문에서는 해양사의 시각에서 민영환 사절단의 세계여행 일정 중 대양항해에 주목해 몇 가지 사건들을 기술하였다. 첫째, 민영환 일행이 러시아로 가는 대항항로 중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는 과정에서 경험한 시공간 관념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둘째, 민영환 일행이 러시아 현지의 해군 시찰과 시베리아철도를 이용해 귀국하는 과정, 윤치호가 제국항로로 귀국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 문제를 다루었다. 셋째, 사절단 내 민영환과 윤치호의 귀국노선을 서술하면서 양자의 인식 차이를 비교하는 동시에 이들보다 먼저 세계 일주한 청국의 벌링게임(Burlingame) 사절단과 일본의 이와쿠라(Iwakura) 사절단과도 비교하였다. 이를 통해 ‘바다로부터 온 근대’의 충격에 대해 조선 지식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