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기 건립된 수정사와 원당사지 등에서 출토된 유물의 제작 연도(편년)에따르면, 제주 지역 사찰은 대체로 1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건립되었다. 이는 탐라국이 고려 군현으로 편입된 12세기보다 이른 시기이다. 고려 초기 태조 때부터 제주 지역은 고려왕조와 교류하기 시작했으며, 11세기 현종 때 구당사가 파견된 이후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제주 지역 불교는 백련결사의 사상적 기반인 천태종이 성행한 전남 서남해안의 강진 완도지역 일대 사찰과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신앙과 사상체계를 공유했다. 전남 서남해안 일대의 사찰은 해로(海路)사원으로, 항해의 안전과 해난 구제를 강조한 관음신앙을 공유했다. 제주 지역에서 출토된 기와와 도자기편이 서남해안 일대에 생산된 제품이 유입되거나 그곳의 영향을 받아 생산된 사실도 그를 뒷받침한다.
몽골이 제주 지역을 지배한 이후 제주 지역에서 불교는 분화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몽골인과 제주인의 종교적 안식처로서 각각 법화사와 묘련사로 역할이 분화되었다. 특히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강진의 백련사와 연결되어 천태종경판을 판각한 사실은 법화사와 구별되는 묘련사의 위상을 보여 준다. 제주 지역은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로상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외부 세계의 불교와도 교류했다. 고려 후기 일본 승려는 제주를 발타라존자가 거주하는 불교의 성지로 인식했으며, 제주 지역 불교와 교류했다. 인도차이나 인도 등지의 남방불교의 요소도 제주 지역 불교에 나타나고 있다. 제주 지역 불교는 제주 지역에 수용된 이후 이곳의 민간 토착신앙과 교류를 통해 토착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좀 더 고찰되어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