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론을 토대로 유치환의 生命의 書에 나타난헤테로토피아 구현 양상을 밝히려는 시도이다. 유치환의 헤테로토피아는 그가 식민지 조선땅을 등진 채 만주행을 선택한 데 기원한다.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사회가 요구한 지식인의 사명을 저버렸다는 죄책은, 자신 그리고 자신의 몸담은 장소에 대한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유치환 시는만주 체험과 속죄의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특유한 헤테로토피아를 구현하고 있다. 이 글은 식민지 조선을 확장하여 재현하고 반복하는 ‘滿洲’ 자체를 ‘거울의 헤테로토피아’로 파악하고, 그 큰 틀 안에 양립하는 ‘일탈의 헤테로토피아/구원의헤테로토피아’를 분석함으로써, 유치환 시의 특질과 의식세계의 지형도를 짚어내고는 데 주안점을 둔다. 요컨대 유치 시에 나타나는 헤테로토피아적 특성은 그가 기존의 시 쓰기 관습을 뛰어넘어 여타 시인들과 구분되는 특이한 시텍스트를 산출하는 동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