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머리글 - ‘제2의 정주영’을 기다리며1. 판문점의 소떼몰이24 여든세 살, 새로운 도전28 실향민에서 ‘큰 목동’으로33 20세기의 ‘마지막 전위예술’36 심야의 백화원 초대소39 김정일과의 담판41 금강산 관광, 합의에 이르다46 우리 시대의 ‘신화神話’2. 가출 시대56 가난한 농촌 집안의 장남으로59 보릿고개의 기억62 방황했던 어린 시절67 열여섯 살, 첫 번째 가출70 금강산 구경으로 끝났으나72 소 판 돈 70원으로78 농사를 숙명으로 받아들였으나82 쌀가게 ‘부흥상회’를 발판으로86 ‘가출 시대’는 끝나고3. 시련은 있어도96 ‘아도서비스’ 수리공장102 깃발 올린 ‘현대자동차공업사’107 6·25 전란의 와중에서110 유엔군 묘지의 보리 물결116 ‘넘버 원, 현대건설’121 위기의 고령교 공사128 미도파백화점 사건131 미군 공사로 발판을 삼고134 엉뚱하게 낙착된 한강 인도교 공사138 시대 변혁의 와중에서142 해외시장으로 눈 돌리다146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153 동토의 알래스카까지4. 실패는 없다170 설계가 바뀐 소양강댐174 경부고속도로 타당성 논쟁176 정주영의 맞장구180 야전침대의 현장소장188 현대자동차의 출범192 포드 사와의 결별198 런던으로 날아간 ‘정 선달’205 “이집트의 아스완댐처럼”216 ‘알라딘의 궁전’을 찾아220 주베일 산업항 공사225 신드바드의 모험233 이른바 ‘정주영 공법’241 ‘현대 제국’을 완성하다5. 그리운 금강산254 눈물의 고향 방문257 금강산, 40년 전의 기억261 바덴바덴에서의 실마리265 우회로였던 모스크바269 늦어진 소떼몰이 방북274 금강호의 첫 출항278 평양의 ‘정주영 체육관’283 개성공단을 따내다286 ‘통일 경제’를 위하여6.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294 전경련의 ‘정주영 시대’298 전경련회관의 방공포대301 날짜가 바뀐 휘호석304 신군부의 퇴진 압력309 서울올림픽유치위원장을 맡아312 IOC 위원 설득작전316 “쎄울, 꼬레아”의 쾌거321 떠맡겨진 대한체육회장 자리324 청와대와의 마찰327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설립332 관훈클럽 신영기금7. 기업가 정신342 “이봐, 해봤어”라는 질책345 ‘근면, 검소, 친애’의 좌우명347 유품으로 남은 구두 세 켤레353 물지게를 지어 나른 신혼 시절357 검소했던 ‘청운동 사모님’361 “부유한 노동자일 뿐”365 수행비서가 없었던 회장님369 신용과 의리를 앞세워373 나폴레옹 리더십377 18번, ‘이거야 정말’383 ‘시인학교’의 문학청년389 ‘담담한 마음’의 수수께끼392 장사꾼의 애국심395 ‘정주영 사관학교’의 인재들8. 정주영 이후404 큰 별, 떨어지다407 북한 조문단의 서울 방문410 정몽구와 정몽준414 정주영 집안의 3세들420 정주영 어록9. 영원한 도전자436 ‘조국 근대화’의 주역439 ‘믿어지지 않는 50년’443 고려대의 명예철학박사 추천사447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다449 ‘날림공사’ 비판453 정경유착은 없었는가458 재벌에 대한 평가는461 정치 참여, 잘못된 선택이었나467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감470 ‘제2의 정주영’을 기다리며476 정주영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