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독립투쟁의 선구적인 인물제1장 출생과 가계신숙주의 후예로 태어나출생·소년기에 일제침략 시작돼제2장 사회의식에 눈 뜨고15세 때 ‘동년군’을 조직, 17세에 혼인관립한어(漢語)학교에 들어가제3장 민족민권운동 단체에서 활동최초의 자유민권운동 단체인 독립협회 참여만민공동회의 간부직 맡아의회설립운동, 정부의 탄압으로 좌절제4장 육군무관학교 졸업 후 교육사업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고향리에 ‘덕남사숙’을 설립하여 실업과목 가르쳐제5장 국권수호운동의 전선에서을사늑약 소식을 듣고 음독 을사오적 처단에 나섰으나 군대해산 현장에서 자결시도제6장 사회활동과 국민계몽운동회사를 차리고 대한협회와 기호흥학회에 참여황성신문에 논설 기고‘영천학계’에 참여, 중동야학교 교장에 취임공업잡지를 창간하고 닭키우기 장려제7장 국치를 겪으면서나철과 함께 대종교 중흥에 나서나라는 망하고, 그 원인을 규명제8장 중국 망명길에 나서다중국의 변화소식을 들으며 망명준비32세, 망명길에 올라 ‘소년의 피눈물’ 지으며 망명길 재촉제9장 상하이에 터를 닦다진보언론 『민립보』 기자와 만나신해혁명에 참여하다 가깝던 중국혁명 동지들 잃고제10장 독립운동기지 설치하다상하이 독립운동기지 동제사를 창설민족교육기관 박달학원 설립제11장 신한혁명당 조직상하이로 모여든 우국지사들 신한혁명당 창당에 참여제12장 대동단결을 위한 행보곤경 속에서도 대동보국단 조직 임시정부수립 촉구한 ‘대동단결선언’ 주도주권불멸론(고유주권론)에 의한 국민주권론제13장 3·1혁명을 촉발하는 외교활동우사 김규식과 윌슨 미대통령에 독립청원서미주동포들에게 ‘한국국민대회’ 개최요청 지도급 독립운동가 39인의 「대한독립선언서」 채택제14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초석임시정부 조각에서 제외됐지만국무총리대리 맡아 임시정부 혼란 수습중국정부로부터 사실상 임시정부 승인 받아내제15장 민족사학자의 면모보인 저술활동‘통언’을 저술하여 중국신문에 연재남의 것만 좇고 우리 것 얕잡는 근성 질타단군을 구심점, 이순신 장군 기려제16장 항일잡지 ‘진단주보’ 발행혼자서 23호까지 편집창간사에 보인 식견과 통찰력‘독립과 평등’을 제기하다제17장 시문에 나타난 글 향기선열·동지들에 대한 시문과 서한 홍암 나철의 순국에 각별한 시문지어제18장 좌절의 늪 그리고 서거큰 업적에도 국무총리대리 사임43세, 25일 단식 끝에 순국상하이 공동묘지에 안치, 1993년에야 유해봉환‘일목요연’한 생애, 덧붙이는 사연부록1 신규식 연보부록2 한국혼(일명 통언)